표목명 |
성태용 |
이형명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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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년월일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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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별 |
남성 |
관련장소 |
경상남도 창녕 |
항쟁지역 |
부산 |
주기사항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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항쟁당시신분 |
부산대학생 |
구술요약 |
구술자는 1960년 이름난 사회주의자들을 많이 배출한 창녕군 석동마을의 창녕 성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. 부친은 일제시기 노동운동과 해방 후 김구 노선의 정치운동을 했던 이력이 있다. 부산동고등학교를 졸업한 구술자는 79년 부산대 문리대 어문계열에 입학한 후 동문서클 동녘, 언더서클 민족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며 가야성당의 노동야학에도 관여하였다. 동녘 선배 이진걸을 도와 10월 15일 부산대 교내시위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, 16일 상대 시위대에 합류한 후 17일까지 부마항쟁에 적극 참여하였다. 19일 동래경찰서에 연행되어 10박 11일 동안 구타를 동반한 가혹한 취조를 받았는데, 당시의 지하 유치장 구조까지 생생하게 증언한다. |
부마민주항쟁관련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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